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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디자이너 박정희>는 국토 공간구성의 관점에서 박정희를 평가한 최초의 책이다.

근대화 혁명은 공간 혁명이다
근대화 혁명은 곧 공간 혁명이다. 전근대와 근대를 가르는 기준은 다양하지만 양자는 공간의 관점에서 뚜렷이 구분된다. 인류는 공간 혁명을 통해 공동체적 삶에서 개인 사생활이 보장되는 이른바 ‘도시형 개인’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언제부터 근대적 의미의 공간을 인식하게 되었을까? 한국은 국토, 도로, 도시 발전을 어떻게 이루고 산업국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을까? 그리고 언제부터 개인의 자아가 존중받는 ‘사생활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을까? 그 출발점에 박정희가 있다.

공간 전략가 박정희의 전략적 결단, 국토개발정책
근대적 의미의 공간계획이 시행되었던 것은 일제시대였다. 조선시대에는 국토계획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경관론(景觀論)이나 풍수론이 대세를 이루었고, ‘무도즉안전(無道則安全)’이라 하여 길이 없는 편이 안보나 치안에 유리하다고 생각했었다. 이에 따라 지도 제작은 엄격히 통제되었다.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 그나마 각성한 것이 한말의 일부 개화파 지식인들이었다. 일제시대에 이르러 대륙진출을 목적으로 북쪽에는 공업, 남쪽에는 농업중심의 불균형적 국토개발이 이루어졌다. 전쟁을 겪었던 1950년대에는 전후복구나 당면한 현안에 대증적, 임시방편적 대응을 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의 여력이 없었다. 전 국토가 종합적으로 개발되고 생산되고 혁명적인 일대 변환을 맞게 된 것은 박정희가 주도한 조국근대화 계획 이후부터다.
박정희의 국토개발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긴밀히 연결되어 경제의 고도성장을 효율적으로 뒷받침하였다. 부강한 나라, 보다 나은 삶의 터전을 만들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로 제도적 기반 및 계획적 장치를 구축하였으며 국토정책을 경제개발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체계화하였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 및 국토 발전과 관련 된 지역차별론에 대해 저자는 허쉬만의 성장거점 이론을 제시한다. 박정희가 어떠한 전략으로 선제적 산업성장입지를 선택하였는지, 지방공업단지와 중화학공업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불균형 발전과 환경, 도시, 인구 등 제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과 정책을 펼쳤는지를 우리는 비로소 알 수 있다. 한국의 국토 대개조와 근대화 기적은 분명 한계와 문제점이 있었으나 박정희의 전략적 결단과 의지가 오늘날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총괄계획가 박정희의 교통정책
국토개발은 철도와 도로, 핵심 물류 인프라인 항만 및 항공교통이 서로 연결될 때 총체적으로 이루어진다. 1964년 박정희가 독일 국빈 방문 시 에르하르트 서독 수상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국가가 발전하려면 경제적 번영밖에 없다. 경제발전은 공장만 건설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도로나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의 기반 시설이 정비되어야 한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박정희는 이때 경험한 독일식 고속도로 아우토반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 당시로서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파격적인 발상으로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했다. 당시 열악했던 우리나라의 도로교통과 일부 정치인들의 극렬한 반대 속에서도 박정희는 특유의 집념으로 2년 반 만에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으며 이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게 되었다.
산업철도와 경부고속도로, 항만 시설과 항공사의 발전은 박정희 정권의 산업화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다. 철도, 도로, 항만 및 항공에서 박정희의 ‘총괄계획가’적 면모가 드러난다, 저자는 현재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 한국의 국력과 위상을 대변해주고 있는 대한항공의 탄생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수도 서울의 탄생
2018년 연말에 우리는 광화문에서 ‘백두칭송위원회’나 ‘꽃물결대학생실천단’, ‘위인맞이환영단’ 등 단체들이 김정은 환영맞이 집회를 여는 것을 목격하였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협박하고 대한민국 영토에 대한 무력 도발 감행으로 우리 국민의 생명을 앗아간 독재자는 찬양하면서 지금의 서울과 대한민국을 있게 한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는 도리어 독재자로 폄훼하다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평양 방문-서울 답방’이라는 평면적이고 기계적인 공식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서울과 평양을 대등한 선상에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평양은 여느 문명국가의 대도시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연극 세트장’으로서 김가왕조체제를 떠받들기 위해 존재하는 도시라고 했다. 김일성광장, 주체사상탑, 개선문, 인민대학습당, 만경대혁명사적지 등이 도시 경관을 압도하고 있고 평양 사람들은 각종 극장 정치를 위한 ‘살아있는 인형’ 혹은 엑스트라라는 것이다. 따라서 평양은 신민(臣民)의 왕도(王都)일 뿐이다.
반면 서울은 문명국가의 수도이며 시민(citizen)의 도시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화려하고 과시적인 수도 건설을 자제하였고, 개인숭배와 도시계획을 결합하지 않았으며, 국가 안보와 경제개발에 집중해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서울을 있게 하였다. 그 결과 오히려 서울은 대한민국이 성취한 근대화의 기적을 공간적으로 형상화함에 있어 너무 약소하고 빈약하다는 인상을 준다. 차제에 시민(citizen)의 서울, 그 의미와 역사를 한 번 되돌아보고 더 이상 독재자 박정희가 아닌 훌륭한 리더, 탁월한 공간 디자이너로서의 박정희를 기억하며 서울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공은 공대로 남기고 보완해야할 것은 후배 세대가 개선하는 것이 역사의 발전일 것이다.


공간 디자이너 박정희의 선물, 공간과 자유 그리고 개인
박정희의 공간 디자인은 단순히 국토 발전과 고도 경제성장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생활양식과 문화, 사고방식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는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주거문제에 아파트 대량공급이라는 해결점을 제시했는데, 이는 단지 좁은 국토의 효율적인 활용 측면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아 확보 공간을 마련해주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 ‘아파트‘는 사생활 공간을 갖게 해주었고, 이 사적 공간에서 키워진 사색과 자아 성찰은 곧 개인과 자유,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집사람’ 또는 ‘안사람’의 지위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켜 여성 인권도 신장시켰다. 자유화와 요즘 시대의 화두인 양성평등도 곧 공간 혁명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세계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생활 공간 보장을 단기간에 이루어냈는데, 그러한 주택정책을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한 것이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전 국토 규모의 산업화와 근대화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의 땅과 공간에 활기와 생명력을 불어넣었고 한국인에게 ‘공간’이라는 것을 선물한 전략가이자 공간 디자이너였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공간의 개발이나 생산, 배치 등에 대한 박정희 개인의 혜안과 역량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결과 발전국가의 구체적인 현장이자 가시적인 성취였던 공간 영역은 박정희 연구사의 공백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또한 숨 가쁘게 달려온 경제와 국토 발전사에 어두운 그림자만을 선택적으로 집중함으로써 공과를 균형 있게 다루지 못했다. 저자도 물론 국토종합개발계획관점에서 흔히 지적되는 불균형적 성장론을 잊지 않고 언급하였지만, 그러나 박정희야말로 공간구성의 혁명이 곧 근대화라는 것을 인식한 위대한 지도자였다는 것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