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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이 뒤바뀐 대학 ―

좌파식 ‘내로남불’의 밑바탕엔 상대주의가

9.11테러 같은 국가적 대재난에 직면한 나라의 국민들이 맨 먼저 할 일은 무엇일까? 대내적으로 애도와 단결, 대외적으로 테러행위자를 규탄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전 미국이 애도하고 규탄하는데 대학사회만은 그러지 않았다고 책은 고발한다(제7~8장). 교수들이 맨 먼저 한 일은 “이슬람은 죄가 없다”고 두둔하는 것이었고, 심지어 음모설까지 흘렸다. 부시 행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실제로 이라크와 전쟁에 들어갔을 때, 지식인들은 도리어 ‘깡패 미국’을 규탄하는 행태를 보였다. 우리나라 천안함 폭침이나 세월호 침몰 때 피어오르던 음모설이 떠오르지 않는가? 실제로 <세뇌>가 고발하는 미 대학교수와 지식인들의 행태는 구구절절이 10년 이상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데자뷔다.

연쇄살인이나 공권력 상대 폭력이 발생했을 때 대학교수들이 일방적으로 범죄자를 두둔하고 사회구조를 탓하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기준은 단 하나, 그 범죄자가 신분이나 이념 면에서 어느 편에 속하냐는 것. 어딜 가나 좌파의 특징인 ‘내로남불’의 근원에는 도덕적 상대주의가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제1장). 도덕의 절대적 기준은 없으니 살인이나 강간이나 폭력이나 거짓말은 그 자체로 선도 악도 될 수 없다 ― 그러니 ‘그가 무엇을 했는가’보다 ‘그가 어느 편인가’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일 수밖에!

미국에서 전통적으로 ‘정상인’으로 치부되던 백인과 이성애자가 대학에서는 역차별 받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예견케 하는 바가 있다. LA폭동 때 한번 겪었지만, 대학 안팎에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계는 백인이나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주류’로 치부되어 역차별의 대상이 된다는 지적도 남의 얘기 같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학 입학 전형에서 ‘인종’을 밝히지 못하게 하는 ‘컬러블라인드 전형’을 둘러싼 논란이다. 유색인과 여성 등 소수자를 어느 정도 우대하는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은 캘리포니아 등 많은 주(州)에서 공식적으로 철폐됐지만, 대학에서만은 필사적으로 어퍼머티브를 고수하려 한다는 것(제4장). 이런 ‘블라인드 전형의 역설’은, 정말로 능력 있는 소수자에게 오히려 모욕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실례를 들어 지적한다.

- SAT 1,600점을 받은 한국계 ‘스탠리 박’은 버클리와 UCLA 모두 불합격, 1,100점을 받은 라티노 ‘블랑카 마르티네스’는 두 곳 모두 합격. (102쪽)

- (라티노 학생이, 소수자우대에) “나는 반대예요, 자력으로 이 학교에 들어왔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다, 내가 성적이 나쁜데도 라티노라서 뽑아 준 줄 알아요. 나한테는 모욕이지요.” (105쪽)

책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이라는 단어를 자주 써 가며 공격하고 있지는 않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놈의 PC”라고 절로 개탄하게 될 것이다.

그 밖에 원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미국 내 흑인과 치카노(멕시코계) 및 유대인 문제 들에도 제법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으나, 한국 독자층에 지나치게 생소할 수 있어 약간의 편집이 필요했다.


‘분리사회로 치닫는 미국’을 가장 먼저 예견하다

<세뇌>가 적확하게 지적하는 대로, 오늘날의 미국은 더 이상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가 아니다. 실제로 정치평론가 터커 칼슨(Tucker McNear Carlson)도 2018년 펴낸 <바보들의 배(Ship of Fools)>라는 책에서, 미국적 가치를 폐기하고 분리사회로 치달아가는 21세기의 미국을 경계하고 있다.

2016년 가을 UC버클리에서는 ‘백인과 이성애자’의 출입이 완전히 금지된 구역을 만들어 달라는 시위가 열렸다. 버클리에서 백인은 학부생의 24퍼센트로 이미 소수인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버클리는 1960년대 학내 인종차별 철폐운동의 성지(聖地)였다!

2017년 5월, 하버드대에서는 이 학교 150년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만의 졸업식(Black Commencement)’이 열렸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미국인들은 모든 영역에서 인종 분리를 철폐하기 위해 싸워 왔는데, 이제는 흑인만의 졸업식이라니?

2018년 봄 CNN은 러시아의 미 대통령선거 개입 의혹을 취재하다가, 더 엄청난 이슈가 터져 중단했다. 라이언 징키 내무장관이 “사람을 채용할 때 다양성보다 적임자가 우선”이라고 말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불씨였다. CNN은 “다양성보다 능력을 앞세우는 채용은 편협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라고 맹비난했다.

기이하지 않은가? 그동안 우리는 사람을 외모나 그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서가 아니라 능력과 행위에 따라서만 평가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이제는 능력이 아니라 피부색과 신체적 특징을 보고 평가하라니?

이 모든 것은 14년 전 벤 샤피로의 <세뇌>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다. 유색인들(흑인뿐 아니라 아메리카원주민, 라티노(중남미 출신)와 치카노(멕시코계), 이란계, 필리핀계, 심지어 성적소수자(LGBT)를 위한 별도의 졸업식까지(제9장). 어떤 곳은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학교측이 ‘그들만의 졸업식’의 판을 깔아 주기도 한다.

자기들만의 졸업식이 따로 없는 것은 이성애, 백인, 남학생뿐이다. 그러나 이들도 자기들만의 졸업식을 갖게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아무도 같이 놀아 주지 않으니까. (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