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소개

  • HOME
  • 도서소개
  • 정치·사회

민둥산을 금수강산으로: 박정희가 이룬 기적

  • 지은이이경준 김의철
  • 옮긴이
  • 출간일2010년 10월 25일
  • 쪽수362쪽
  • 제본형식무선
  • ISBN978-89-6523-993-2 03900
  • 정가17,000원

주요 온라인서점 판매페이지 바로가기

책 내용 소개

* 헐벗은 산하를 푸른 강산으로, 상전벽해의 기적을 이룬 지도자

 

치산치수(治山治水)가 되어 있지 않으면 식수난만 겪는 것이 아니다. 쌀 생산량도 준다. 비가 오면 논이 넘치고 안 오면 논바닥이 갈라지니 벼가 제대로 클 리가 없는 것이다. 어디 쌀뿐이랴? 우리가 먹는 모든 작물, 채소, 과일, 그리고 가축에 이르기까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의 물을 요구한다. 치산치수가 되어 있지 않으면 당장 인간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물의 관리는 보관과 정수의 두 갈래로 나뉜다. 정수과정은 물만 있으면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해낼 수 있으나 보관은 차원이 다르다. 물의 보관은 두 가지 주체가 담당한다. 하나는 댐을 비롯한 저수시설이고, 또 하나는 숲이다.

이 책은 그토록 소중한 생명수를 품어주는 숲 가꾸기, 즉 박정희 대통령의 국토녹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는 왜 국토녹화를 국정 최고 목표의 하나로 삼았으며, 어떤 수단을 동원하여 어떤 방식으로 국토를 녹화했는가? 그런 노력은 우리에게 어떤 열매를 맺게 해주었는가? 열매는 하나뿐인가 아니면 부산물도 많은가? 여기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이며,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점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이다.

 

* 댐과 산의 저수능력은?

 

댐과 산의 저수능력은 어느 쪽이 더 클까? 아주 쉬운 말로 해서, 우리나라 모든 댐이 가두어놓고 있는 물의 양과 우리나라 모든 나무들이 붙들어놓고 있는 물의 양은 어느 것이 더 많을까?

한국 산림면적은 국토면적의 64% 가량인데, 산에 저장되는 물의 총량은 180억 톤이다. 국내에서 가장 큰 소양강댐의 유효 저수능력인 19억 톤의 9배가량 되고, 전체 49개 주요 댐의 총 저수능력인 140억 톤(2006년 통계)보다 40억 톤이나 많다. 이렇게 큰 저수능력은 산에 나무가 우거져 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1961년의 우리나라 산은 절반 이상이 민둥산이었다. 그러니 댐이라고 할 만한 것도 몇 개 되지 않았다. 일제하에 준공된 화천, 청평, 보성강 댐과 해방이후 건설된 괴산댐이 전부였으며, 저수량은 화천댐(6억6천만 톤)을 제외하면 1억 톤급도 안 되는 소형 댐들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상류 수원지역의 산림을 녹화함으로써 저수능력을 높인 결과 1985년(최초의 공식 기록을 가진 해) 서울시의 상수도 공급량은 연간 13억 톤을 기록, 서울시민이 마음대로 물을 쓸 수 있게 되었다. 2010년 현재 서울시는 매일 340만 톤의 물을 시민들에게 공급한다. 시민 1인당 매일 0.3톤의 물을 쓰고 있는 셈이다. 덕분에 세탁기를 마음대로 돌리거나, 매일같이 집에서 샤워를 할 수도 있게 되었다.

 

* 그린벨트 설치와 자연보호운동

 

1967년 박 대통령은 산림녹화를 위해 농림부 산림국을 산림청으로 독립시켰다. 그러나 농림부장관은 당면한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시급하였으므로 산림청의 산림녹화사업에까지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보다 못한 박 대통령은 1973년 1월 15일, 제3대 산림청장에 손수익을 임명한 뒤 2월 23일의 비상 국무회의를 거쳐 산림청을 내무부로 이관해버렸다. 그 만큼 산림녹화에 관한 의지가 집요했던 것이다.

산림청이 내무부로 이관되자 지방행정조직과 경찰행정조직을 활용하여 산림보호를 강화할 수 있었다. 종합적인 산림의 보호 관리는 도지사와 시장 ⋅군수가, 보호단속은 경찰서장이, 기술지도는 산림공무원이 맡는 삼위일체의 체계를 확립한 것이다. 이로써 산림녹화와 보호 위주의 산림정책을 강력히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또한 박 대통령은 1970년대 초의 수도권 개발제한구역 지정을 신호탄으로 그린벨트를 확대해나갔고, 1977년에는 대대적인 자연보호운동을 시작했다. 그 이듬해에는 자연보호헌장 선포식을 갖고 온 국민의 관심이 국토녹화에 쏠리도록 이끌었다.

 

* 선봉장을 맡은 김현옥과 손수익

 

김현옥은 자신의 자리가 어떤 일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았고, 임명권자가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독특한 리더십과 정열적 업무추진력, 그리고 탁월한 조직 장악력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는 1971년 10월부터 내무부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박 대통령의 심중을 꿰뚫고 새마을사업과 산림녹화사업을 2대 국책과제로 선정하여 한 치의 빈틈없이 일을 추진했다.

손수익은 내무공무원 출신이다. 새마을운동이 태동될 때 청와대 비서실에 파견되어 정무비서관으로 근무하면서 박 대통령을 보좌했다. 내무부 지방국장 시절에는 새마을운동의 창안에 참여했고, 경춘(京春)국도변 정비사업을 깔끔하게 마무리함으로써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그로 인해 박 대통령은 경기도지사이던 손수익을 산림청장으로 발탁했다. 관례로 따지자면 강등이나 다름없는 인사였으나, 손수익은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그 후 장장 6년 동안 산림청장으로 일하면서 우리나라와 세계 산림녹화의 역사를 고쳐 쓰게 된다.

 

* 박정희의 치밀함, 그리고 에피소드

 

1975년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대구로 내려갈 때 박정희는 고속도로 주변 구릉과 절토부분의 조림 및 조경에 대해 24건의 지시를 내렸다. 이는 거리로 따져 9km당 1건, 매 6분마다 1건씩 지시를 내린 셈이었다. 각종 대규모 사업을 둘러보던 박정희의 시찰⋅지시⋅확인은 조경 프로젝트의 조사⋅계획⋅설계⋅감리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측근이었던 김정렴 비서실장에 의하면 박 대통령은 자신이 일류 조경가라고 생각하곤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퇴청 후에도 창안하고 메모하고 그림을 그려 다음날 아침에 지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직접 청와대 정원수의 가지치기도 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가지치기를 즐겨 집무실 서랍 속에 전정가위를 항상 넣어 두고 있었다. 1979년 11월, 시해사건 직후 유품을 정리할 때 전정가위가 서랍에서 발견되었다.

 

* 10·26 앞두고 돌이켜보는 ‘박정희가 일군 기적’

 

한국의 근대사를 지켜본 한 외국기자는 “한국은 그냥 발전한 게 아니라 로켓처럼 치솟았다.”고 했다. 세계 경영학의 대부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피터 드러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이룩한 성과 중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사우스 코리아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 모두가 집권 기간 동안 산림녹화를 완성함으로서 훗날 세계적으로 20세기 개발도상국의 기적이라는 칭찬을 듣게 한 박 대통령의 공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후손들에게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고, 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2001년 4월 5일 식목일. 산림청은 이 같은 업적을 기려 박 대통령을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하고, 기념비를 경기도 광릉에 있는 국립수목원 뜰에 세웠다.

 

= 차례 =

 

머리말

프롤로그; 1961년

 

제 1 부 사막화의 문턱에서

 

벌거벗은 금수강산

살기 좋은 나라의 필요충분조건

끌려 다니는 정부

군사혁명 지도자 박정희 장군

청년 박정희

 

제 2 부 대통령의 가슴앓이

가난한 대통령

또 다른 혁명의 해 1967년

싸움에 응할까? 몸을 만들까?

영일만의 혈투

식량도 보태주는 조림사업

 

제 3 부 내무부 산림청

정부수립 후 가장 잘 된 정책

일이 되게 하는 기막힌 아이디어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

두 가지 걸림돌

 

제 4 부 되찾은 금수강산

쌀을 자급자족하다

눈도 즐거워야 한다

잘 가꾸어야 재목이다

승전고를 울리다

경제개발보다 더 값진 위업

 

에필로그; 미완성을 완성으로

 

저자 소개

 

=이경준(李景俊)=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와 플로리다대학교에서 수목생리학 분야로 각각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산림청 임목육종연구소 전문직연구원을 거쳐 1985년부터 서울대학교 농생대 산림과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26년 근속 후 2010년 8월 정년퇴임하였으며, 지금은 명예교수다.

서울대학교 식물병원을 창설하여 초대 병원장을 맡았으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 서울시 건설심의위원, 한국임학회장을 역임했다. 한국 임학의 선구자로서 박정희 대통령을 도와 산림녹화에 크게 공헌한 현신규 박사의 전기 『산에 미래를 심다』를 집필했으며, 『수목생리학』『조경수식재관리기술』『조경수병해충도감』(공저)『한국의 천연기념물 노거수편』『임학개론』(대표저자) 『산림생태학』(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김의철(金義哲)=

서울대학교에서 생명과학에 심취하였으나 운명은 다른 길로 안내했다. 졸업 후 라는 영자신문에 스카우트되어 7년간 광고 카피를 썼고(영어로), 이에 또 심취하여 Eastern Ad-한덕광고라는 광고대행사를 손수 설립하고 20년간 광고 카피를 썼다(우리말로). 정말 실컷 썼으며, 이 때 시쳇말로 떴다.

IMF 파고를 맞게 되자 치악산 골짜기로 낙향하여 본격 집필에 몰두했는데, 첫 작품이 600쪽짜리 장편소설 『돌격장』이다. 계속해서 『김범일 전기』를 썼고, 현신규 박사 전기 『산에 미래를 심다』에도 참여했다.

근래에는 다시 생명과학에 심취하고 있다. 연어 같은 삶이다. 2006년부터 원주지역 교사 연수, 원주 연세대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2009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강원일보>에 생명과학 관련 교육칼럼을 30회 가까이 연재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