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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국을 버리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한국

  • 지은이나가타 아키후미
  • 옮긴이이남규
  • 출간일2007년 11월 30일
  • 쪽수264쪽
  • 제본형식무선
  • ISBN978-89-91965-47-8 03830
  • 정가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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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 소개

한․미․일 관계로 본 대한제국大韓帝國 망국사亡國史

 

19세기 후반 일본에 뒤져서 개국한 한국은 일본, 청, 러시아 등의 주변국을 중심으로 한 구미열강의 영향을 받아 국운이 기울기 시작했다.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의 결과, 1905년 11월 ‘한일보호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한국은 일본의 보호 아래 놓이고, 결국 5년 후인 1910년에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다.

이 책은 한국이 결정적으로 망국의 비탈길을 굴러 내려가기 시작한 20세기 초부터 일본에 병합되는 1910년까지, 그 당시 국제 역학관계에서 우선권을 점유하고 있던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정권이 한국 문제에 어떤 자세로 임하고 어떤 대응을 했던가, 그에 대해서 한국 정부, 특히 미국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던 고종 황제가 어떤 대응을 했던가에 대해서 상세히 다루고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당시 국익을 앞세운 루스벨트가, 바람 앞에 등불 같았던 한국의 운명을 얼마나 냉혹하게 외면했으며, 대조적으로 신흥 일본에는 얼마나 관대하고 은혜로웠나 하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한국이 이 지경에 이른 이유를, 1882년에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 제1조의 주선조항에 대한 양국의 해석 차이에서 찾는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 측의 안이한 상황 인식을 문제로 삼는다.

그렇다면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어떻게 체결되었으며, 문제의 주선조항은 어떤 것인가?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체결

 

동아시아에서는 오랫동안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 여러 나라가 다양한 형식으로 중국과 관계를 유지하는 전통적인 ‘동아시아 국제 시스템’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구미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으로 상품의 대량 생산화 및 교통수단의 발전 등으로 구미 여러 나라의 동아시아 정책이 적극화되고, 중국과 일본은 구미 중심의 국제사회 안으로 편입되었다. 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에서 패하고 일본은 1853년 페리 함대가 내항함으로써 구미 여러 나라와 국교 수립을 강요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미 여러 나라가 쇄국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한국에 눈을 돌린 것은 극히 자연스러웠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에는 배타적 색채가 강한 대원군大院君이 권력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구미 국가와의 접촉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1866년 제너럴셔먼General Sherman 호 사건과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를 빌미로 미국은 드디어 1882년 조선과 수교를 맺는다.

1882년 5월 22일, 미국 대표 슈펠트와 한국 대표 신헌申櫶, 김광집金廣集 사이에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다. 이는 조선이 구미 국가와 체결한 최초의 조약이었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제1조 주선조항周旋條項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이듬해인 1883년 1월 9일에 미국 상원에서 비준되고, 5월 19일 서울에서 비준서가 교환되었으며, 6월 4일 공포를 거쳐 미국과 한국 사이에 정식으로 외교 관계가 성립되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이 조미수호통상조약 제1조의 해석의 차이가 결국 미국이 한국을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음은 조미수호통상조약 제1조 주선조항이다.

 

미 합중국과 조선 왕국은 상호 인민 간 영원한 친선 우호 관계 수립을 충심으로 원하면서, 이 목적을 위해 미 합중국 대통령은 미국 해군 함대 사령관 R. W. 슈펠트를 전권 위원으로 임명하고, 조선 국왕 폐하는 경리통리기무위문사經理統理機務衙門事 신헌申櫶, 경리통리기무아문사經理統理機務衙門事 김광집金廣集을 전권 위원으로 임명하며, 이들 전권 위원은 각자의 전권 위임장을 상호 열독해, 그 양식이 타당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하의 몇 개 조항을 협정한다.

 

제1조 미 합중국 대통령과 조선 국왕 및 각 정부의 공민과 신민 간에 영원한 평화와 우호가 존재하는 것으로 한다.

타국이 일방의 정부를 부당 또는 억압적으로 다룰 때, 타방의 정부는 사태의 통지를 받았을 때 원만한 타결을 주선해 그 우의를 표시한다.

(후략)

 

주선에 관한 양국의 인식 차이

 

이른바 주선조항이란, 제3국이 체약국締約國의 일방을 억압적으로 다룰 경우 체약국의 타방은 사태의 통지를 받아 원만한 타결을 위해 주선을 한다는 것이다.

이 주선조항에 대해서 당초부터 한국과 미국이 각각 다른 해석을 했다. 한국 측은 그것으로 미국과 일종의 동맹 관계에 들어갔다고 생각한 데 반해, 미국 측은 국교 개시에 즈음한 단순한 인사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 뒤 1905년까지 20여 년간 자국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긴박해지고,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한국은 미국에게 주선을 요청했다. 그러나 미국은 그런 요청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국제법상 주선 행사는 의무적인 것이 아니므로, 미국이 한국의 요청을 계속 거절한 것이 국제법에 위반되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은 반드시 주선을 행사해 주고, 주선조항으로 미국과 동맹 관계에 들어갔다고 생각한 것은 그런 국제법의 지식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미국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주선조항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주선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주선을 행사해서 한국 문제에 개입해도 미국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고, 직접 한국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문제에 사활적 관심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일본에 맡기는 것이 미국으로서는 훨씬 값싸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문호개방정책에 도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러시아를 억제하기 위해서도 일본에게 맡기는 것이 유리했다. 한국의 주선 요청에 응하는 것은 이상과 같은 미국의 생각에 역행하는 것이었으므로, 미국으로서는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다.

 

 

루스벨트의 대한국관對韓國觀

 

이와 같은 미국의 대한국 자세는 1901년 6월 매킨리 대통령의 암살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루스벨트에 의해 더 확고해진다.

루스벨트는 전근대적인 러시아의 차르 체제를 혐오하고 있었고, 세력균형론에 입각해 한반도로 치고 내려오는 러시아에 대해 간과할 수 없는 입장에 있었다. 그래서 러일 전쟁 발발 직후 친일적 자세를 표명했던 루스벨트는 그 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의 승리가 바람직스럽고, 그 결과로서 일본이 한국 내의 지위를 굳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는 그 당시 미국의 대외정책을 맡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보낸 다음과 같은 서한을 통해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나는 일본이 한국을 손에 넣는 것을 보고 싶다. 일본은 러시아에 대한 견제가 될 것이고, 지금까지의 행동에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중국을 분할하는 일 같은 것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 일은 결국 누구를 위해서도 좋지 않은 것이다.

-제1차 한일 협약 체결 전인 8월 11일, 주미 독일 대사 슈테른버그Hermann Speck von Sternberg에게 보낸 서한에서

 

우리는 한국인을 위해서 일본인에게 전혀 간섭을 할 수 없다. 한국인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격도 가하지 못했다.

-1905년, 루스벨트는 1월 28일 국무장관 헤이에게 보낸 서한의 마지막 부분에서

 

만약 지금 평화가 온다면 일본은 전혀 독립할 수 없음을 보여 준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어야 하며, 뤼순과 주변에 있는 러시아의 권리를 계승해야 하지만, 한편 만주가 중국으로 복귀하는 것도 보고 싶다…….

-1905년 2월 6일 주 이탈리아 대사 메이어에게 보낸 서한 속에서

 

이처럼 “한국인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격도 가할 수 없었다”라든가, “한국은 전혀 독립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줬다”라고 한 그의 발언을 통해 판단하면, 외세로부터 자신을 지키거나 독립도 할 수 없을 만큼 나약한 한국보다는 한반도에서 러시아나 청국에 대해 ‘동등한’수준의 힘을 가진 일본과의 관계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세력균형이라는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국가의 역량이라는 개인적 사고의 측면에서도,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고종 황제의 요청은 루스벨트에게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100년 전과 오늘날의 한국 그리고 국제관계

 

이 책의 내용은 말하자면 ‘과거의 사건’을 기술한 것이다.

일본인 학자가 대한제국 망국의 원인을 국제적 법제에 대한 인식 능력의 결여, 강대국의 침략적 접근에 대항할 수 없는 약소국의 입지 등에서 찾고, 당시 한국의 운명을 국제적 추세에 비추어 분석하다 보니, 문화적으로 일찍이 개화한 일본이 이웃나라 한국을 침략한 범죄성을 다소 희석하고 은폐한 측면도 없지 않다. 아울러, 도덕성의 권화이자 전 세계를 향한 민주주의의 전파자로, ‘세상에 둘도 없는 나라’임을 자처해 온 미국을 향한 고종의 간절한 요청을 싸늘하게 외면하고, 한국 문제를 일본에 떠넘긴 루스벨트의 행동을 ‘해석의 차이’라는 개념만으로, 나아가서는 한국 측의 국제법에 대한 인식 능력의 부족으로만 설명한 점은 어쩌면 이 책의 약점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미국과 한반도의 관계, 일본과 한반도의 관계, 그리고 6자 회담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를 시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35년의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남북 분단을 겪고 형제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비극적 상황을 지나 눈부신 경제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까지 이룬 한국의 모습은 분명 10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등 주변국들이 한국과 한반도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은 100년 전과 변함이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국이 100년 전과 같은 상황을 겪지 않으려면 이 책에 담긴 과거의 사건을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늘 그래왔듯, 역사歷史는 바로 현재를 보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차례

 

추천사

제1장 이전의 역사

1.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2. 한국의 미국에 대한 기대 증대와 미국의 한국에 대한 관심 후퇴

3. 루스벨트 정권의 극동관 형성과 한국

4. 루스벨트와 알렌의 대결

 

제2장 러일 전쟁 초반 미국의 대응과 한국

1. 한국의 중립 선언과 미국의 친일적 자세

2. 알렌의 소극적 자세 전환

3. 사태 진전에 대한 미국의 대응-한일 의정서와 제1차 한일 협약을 중심으로-

 

제3장 루스벨트의 대한국 자세와 그 배경

1. 루스벨트의 상황 인식 변화와 대한국 자세

2. 알렌의 주한 공사 해임과 모간의 임명

3. 루스벨트의 대한국 자세 배경

 

제4장 ‘가쓰라․태프트 밀약’과 한국

1. ‘협정’ 합의까지의 경과

2. ‘협정’의 누설 문제

3. ‘협정’의 성격과 의미

 

제5장 한국의 대미 요청

1. 러일 전쟁 중반까지의 조력 요청

2. 이승만․윤병구의 루스벨트에 대한 요청

3. 앨리스 루스벨트 양 방한단 일행에 대한 요청

 

제6장 한국 보호국화 및 일본의 한국 병합과 미국

1. 한국 보호국화에 대한 미일 양국의 최종적 자세

2. ‘한일 보호 조약’ 체결과 주한 미 공사관 철수

3. 헐버트․민영찬의 대미 요청과 실패

4. 일본의 한국 병합과 루스벨트

5. 에필로그

 

결론

 

후기

한국어판 후기

 

부록 I 조미 수호 통상 조약 발췌문

부록 II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하와이 거류 한국인의 청원서

부록 III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고종 황제의 친서

 

저자 소개

지은이 소개

 

나가타 아키후미長田彰文

 

약력

1958년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남.

1981년 와세다早稻田 대학교 정치경제학부 경제학과 졸업.

1986년 교토京都 대학교 법학부 졸업.

1989년 히토쓰바시一橋 대학교 대학원 법학연구과 석사과정 수료.

1992년 히토쓰바시 대학교 대학원 법학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1992년~1994년 가고시마鹿兒島 대학교 법문학부 전임강사 및 조교수.

1994년 히토쓰바시 대학교 대학원 법학박사 학위 취득

1994년~2004년 조치上智 대학교 문학부 사학과 조교수.

2001년~2002년 서울대학교 국제지역원(현 국제대학원) 객원연구원.

2004년~ 조치 대학교 문학부 사학과 교수.

 

저서

《日本の朝鮮統治と國際關係-朝鮮獨立運動とアメリカ 1910~1922》(헤이본샤平凡社, 도쿄, 2005년)

 

옮긴이 소개

 

이남규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신문대학원을 수료했다. 조선일보 국제부장, 워싱턴 특파원, 논설위원을 지냈다.

저서에는 《첨단전쟁, 걸프전기》, 《세계의 젊은이》, 《인터넷 유머》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스컹크웍스》, 《마야문명》, 《나는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 《그레이트 게임》, 《데모사이드: War & Democide Never Again》, 《블루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