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소개

  • HOME
  • 도서소개
  • 실용·교육

조형은 골법이다

  • 지은이김영길
  • 옮긴이
  • 출간일2016년 12월 5일
  • 쪽수256쪽
  • 제본형식무선
  • ISBN978-89-6523-703-7 03620
  • 정가20,000원

주요 온라인서점 판매페이지 바로가기

책 내용 소개

눈으로 쓰는 현대미술 이론

 

작가는 결국 작품으로 말한다. 현대미술의 심장부 뉴욕에서 30년째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화가/저자의 눈에는 모더니즘이든 포스트모더니즘이든 미니멀리즘이든, 심지어 오브제와 개념예술까지도, 그것이 현대예술이기 위해서는 근대예술과 차별화되는 하나의 ‘현대적 조형원리’로 설명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원리를 저자는 동아시아 회화의 조형원리 중 하나인 ‘골법(骨法)’에서 찾는다.

 

1,500년도 더 된 동아시아 회화 원리인 골법을 저자는 ‘최소화와 경향성’으로 이해한다. 저자에 따르면 ‘최소화와 경향성’이 전면에 등장하는 시기가 현대예술의 시작점이며, 이런 의미의현대예술은 서양의 경우 19세기 인상주의에서, 동아시아는 명(明) 말기인 17세기 초 동기창과 팔대산인에서 각각 시작되었다.

 

저자는 철저히 현장의 사람이다. 동과 서를 꿰뚫는 현대적 조형원리의 비밀을 파헤쳐 가는 화가-저자의 여정은 이론가들의 접근과는 또 다른 감칠맛이 있다. 후기인상주의의 세잔, 변기의 뒤샹과 초현실의 마그리트로부터 데이비드 살르, 지그마르 폴케, 안젤름 키퍼, 로이 리히텐슈타인(릭턴스틴), 줄리안 슈나벨, 잭슨 폴록, 장미셸 바스키아, 게오르크 바젤리츠, 빌 비올라, 앤디 워홀까지, 동아시아 옛 작가로 동기창 팔대산인 김정희, 현대의 박수근 백남준 김수자 김아타까지 풍성한 도판을 곁들인 작품 분석, 거기에 까까머리 때부터 50년에 이르는 화가/저자 자신의 고민의 여정과 함께 읽어 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목 차

 

추천의 글(박영택, 이진오)

책머리에

인용 작품 목록

 

(들어가며) 동과 서, 통하다

 

01 The ‘THIRD’ Mind

겉만 핥고 만 ‘미국 속 동양’ ∣ 서양 현대미술에 숨어 있는 동양적 조형 의식 ∣

★마르셀 뒤샹

서양 현대미술은 동양화의 뉴 버전인가

 

02 골법과 기운

명나라 그림 속에 포스트모던 공간이 ∣ 사혁의 화육법 ∣ 에너지의 원천, 골법 ∣ 최소화와 경향성 ∣ 머리, 눈, 손, 마음

 

03 포스트모더니즘과 골법

진공묘유(眞空妙有) ∣ 힘의 상대성원리 ∣

★데이비드 살르 ★지그마르 폴케

이질적인 공간의 충돌 ∣

★안젤름 키퍼 ★로이 리히텐슈타인

모더니즘 대 포스트모더니즘 ∣

★르네 마그리트 ★줄리안 슈나벨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골법 화론

 

04 <세한도> 속 포스트모던의 역학(力學)

단출한 그림 속 끝없는 스토리 ∣ <세한도> 골법 구성의 실제 ∣ 추사 서예 속 원심력과 구심력

 

05 감춤의 미학

신은 왜 ‘얼핏 본 모습’을 하고 있나 ∣ 오브제, ‘작품 뒤에 숨기’ ∣ 잘 속여야 예술이다 ∣

★잭슨 폴록 ★장미셸 바스키아 ★게오르크 바젤리츠

‘마음 없이’

 

06 함축

미완의 열린 구조 ∣ 현대예술은 인상주의부터 ∣

★폴 세잔

박수근의 함축과 절제

 

07 신의 한 수, 여백

여백, 주관적 공간의 매혹 ∣ 여백, 응축된 사유의 공간 ∣ 여백, 텅 빈 생명의 공간 ∣ 무상(無常),흘러감의 미학

★빌 비올라 ★김아타와 앤디 워홀 ★김수자

 

08 미니멀리즘과 골법

긍정, 부정, 다시 긍정 ∣ 단색화(모노크롬)와 물파(모노하) ∣

★이우환 ★도널드 저드와 리처드 세라

오브제의 조형 의지

 

09 골법의 이해와 오해

살아 있는 자율 공간 ∣ 골법은 스타일이 아니다

사이 톰블리와 마크 로스코

유행은 더 이상 첨단이 아니다 ∣ 진짜 골법, 가짜 골법 ∣

브라이스 마든 알베르토 자코메티

동양문화에 내재한 현대성

 

10 미술사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서

필묵: 구상과 추상의 공존 ∣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 현대예술의 신(新)동양주의 ∣

존 케이지

뿌리를 되돌아봐야 할 한국 현대미술 ∣ 다시 쓰는 미술사

 

11 미술과 창의적 삶

골법으로 돈 벌기 ∣ 존재형의 삶, 경향성의 삶 ∣ 미술에서 배우는 도전과 창의

 

(나가며) 발자국에게 길을 묻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 현대미술이 동쪽으로 간 까닭 ∣ 동양미술사에서 현대의 기점

동기창과 팔대산인

 

에필로그

 

(책 소개)

명나라 그림 속에 포스트모던 공간이

 

스물아홉에 유학 간 뉴욕에 눌러앉아,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현대미술의 도도한 흐름 앞에서 화가로서 자기 조형을 고민하던 화가는 어느 날 17세기 중국 수묵화 한 장 앞에서 신비한 체험을 한다.

 

“발단은 우연히 찾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였다. 마침 전시 중인 중국 명(明)나라 때 화가 동기창(董其昌)의 작품을 만났고, 그 속에서 또 하나의 작은 포스트모던 공간을 보면서, 뜻밖의 발견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현대의 서양미술과 400년 전의 동양 그림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적이 없던 터였다. 그런데 동기창의 그림은 명백히 포스트모던 공간을 구현하고 있었다.

놀라움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시작은 동양의 전통 회화에서 서양미술의 조형 원리가 보이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거꾸로 서양 현대미술에서 동양화의 논리가 또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골법용필’과 ‘기운생동’이었다. 현대미술, 즉 컨템퍼러리 아트(Contemporary Art) 또는 모던 아트(Modern Art)는 바로 이것, 우리가 그동안 오래 잊고 있던 동양적 미학의 또 다른 버전이라는 깨달음 앞에 나는 전율하고 있었다.”

_2. 골법과 기운(38쪽)

 

‘골법용필’은 서기 500년 전후, 중국 남조 제(齊)나라 화가이자 화론가인 사혁(謝赫)의 ‘화육법(畵六法)’, 즉 ‘그림의 여섯 가지 법’에 나오는 말이다. 본래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이 첫째이고 골법용필은 그다음이다. 기운생동은 그림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경지(목적)이고 골법용필은 이를 위해 갖추어야 하는 수단(과정) 중 하나인데, 조형의 논리에 골몰하던 화가는 목적인 기운보다 과정인 골법에 더 빠져들면서, 골법을 붓 테크닉 정도로 여기던 전통적인 이해를 훌쩍 뛰어넘어 ‘골법이란 화폭을 살아 있게 만드는 공간 구조이다’라는 파격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림이 살아 있으려면 요소들이 화면 상에서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정적(靜的)인 조화만으로는 생동이 안 되고, 동적인 변화가 함께해야 비로소 그 그림이 생기를 띤다. 변화란, 공간 상에서 끊임없이 에너지의 이동이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변화, 요컨대 에너지의 발생과 이동은 골법이라는 독특한 공간 구조를 통해서 가능해진다. 이처럼 골법이 공간의 변화를 주도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동세(動勢)가 바로 기운생동이니, 골법용필은 기운생동의 토대가 된다.” _ 2. 골법과 기운(43쪽)

 

 

‘최소화, 경향성, 함축성’이 조형 에너지의 원천

 

화가/저자가 보기에 결국 골법용필과 기운생동은 같은 현상의 다른 면을 가리키는 말에 불과하되, “골법은 원인이고 기운은 결과”이며, “골법이 그릇이라면 기운은 내용물”이다(43-44쪽). 그리고 골법이 뿜어내는 에너지의 원천은, 스스로는 ‘최소화’를 지향하면서(51-52쪽) 스스로 변하려는 ‘경향성’에 있다(47쪽).

 

이후로는 막힘이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공간 구성의 기본 원리는 이질적인 조형 요소인 A와 B의 “갈등을 통한 조화”(보기: 데이비드 살르, 59-62쪽), 또는 “예기치 못한 우발적 충돌”(보기: 지그마르 폴케, 62-64쪽)이다. 초현실주의는 A와 B가 만나 제3의 “비현실적인 사물 C”가 되는 구조로 설명된다(보기: 르네 마그리트, 73-75쪽; 줄리안 슈나벨, 76-80쪽).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나 서예가 품고 있는 정중동의 에너지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비견되는, 흐트러뜨리는 ‘원심력’과 잡아 주는 ‘구심력’의 절묘한 균형이 비결이다(제4장). 레디메이드나 오브제, 백남준의 비디오 작업 들은 작가가 기성품의 뒤에 숨으면서 궁금증을 더 부추기고 심지어 보는이를 속이기까지 하는 “감춤의 미학”이다(제5장). 가시적인 요소를 최소화한 미니멀리즘은 “현실에 대한 일종의 부정”을 통해 진정한 본질세계를 보여 주려는 “긍정과 부정, 그리고 다시 긍정”의 과정이며(160-161쪽), 따라서 미니멀리즘의 최소화는 역설적으로 “표현의 최대화”를 겨냥하는 것이다(164쪽).

 

이처럼 골법 공간이 경향성을 갖고 생동하려면 함축이 필요한데, 이는 동아시아에서는 천 년도 더 된 그림과 문예의 덕목 아니던가.

 

“골법이 경향성을 갖기 위해서 반드시 지녀야 하는 특성이 바로 함축성이다. 그런데 함축된 A는 마치 암축된 고무풍선처럼 부족해진 나머지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안주하지 못하고 팽창이나 반발하려는 성질을 강하게 가진다. 이러한 변신 성향이 공간에서 에너지를 유발하는 경향성이 되고 기운생동의 모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덜된 표현과 함축된 표현은 엄연히 다르다. 덜된 표현은 그냥 미완성이지만, 함축된 표현은 미완성처럼 보이기는 해도 사실은 더 이상 손을 댈 곳 없는 완성체적 의미가 있다.” _ 6. 함축(124쪽)

 

어린애 장난 같은 장미셸 바스키아의 그림에서는 원초적인 힘과 생명력이 넘쳐 나는 반면 진짜 어린아이의 그림에서는 그런 에너지가 없는 것은, 어린이의 그림은 미완성이고 바스키아의 것은 함축이기 때문이다(130쪽). 박수근의 나무 그림들의 현대성도 단출한 구성, 함축과 절제로 요약된다(131-134쪽). 전통 수묵화의 여백조차 그저 ‘비어 있음’이 아니라 누구든지 자신의 생각으로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개인적, 주관적 공간”이고, “응축된 사유의 공간”이고, 프로이트적 무의식에 비견되는 “텅 빈 생명의 공간”이다(제7장).

 

회화뿐 아니라 극도로 함축된 자코메티의 인물상(142쪽), 남성용 소변기를 그냥 갖다놓은 마르셀 뒤샹의 <샘>이나, 미술을 넘어 존 케이지의 <4분 33초> 같은 극도의 미니멀 음악(50쪽)까지, 저자 식의 골법으로라면 설명하지 못할 것이 없다.

 

 

동양을 닮아 가는 서양 현대미술

 

이렇듯 ‘최소화와 경향성을 통한 공간의 생동’을 구현하려 하는 것이 서양 현대미술이며, 그런 의미에서 서양의 현대미술은 19세기 세잔 등의 인상주의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인상주의는 그전까지 객관적으로만 보려 하던 사물을 거꾸로 주관적인 눈으로 해석하기 시작한 사조이다. 즉, ‘무엇을 보는가?’ 하는 대상 중심 시각에서 ‘어떻게 보는가?’ 하는 주관 중심의 시각으로 바뀐 것이 인상주의이다. 그전까지의 사실주의적 전통이 객관적 외형을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일에 치중한 반면, 인상주의와 그 이후의 사조들은 한 발 물러서서 본질세계, 즉 사물 자체에 대해 주관성을 가미한 지적(知的)인 해석을 시도했다. 바로 이 ‘지적인 해석’이 서양미술사에서 전통과 현대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동양화는 일찍부터 단색인 먹 하나로 세상을 표현했다. 이는 외형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세계 혹은 주관의 세계를 보여 주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애초부터 그림에서 시각(바깥세상)이 아닌 지각, 본질, 주관으로 접근하는 ‘내면세계’를 더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면적 가치와 정신성을 근간으로 삼는 미술 논리는 동양에선 천 년도 더 된 것이지만, 서양에서는 19세기 말 인상주의부터 이런 조형 의식이 본격적으로 대두한 것이다.” _1. The ‘THIRD’ Mind (32-33쪽)

 

이런 의미의 ‘조형의 현대성’이 동아시아에서는 17세기 명-청(淸) 교체기의 동기창, 팔대산인(八大山人) 등의 화풍에서 나타난다고 저자는 본다(240-243쪽). 얼핏 오랜 세월 불변이었던 것만 같은 동아시아 그림에 사실은 일찍부터 서양 현대미술에 비견할 현대성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그 핵심인 ‘골법’에 동아시아인이 주목한 것이 무려 1,500년 전부라는 것, 이것이 바로 저자가 책 서두에 고백한 ‘전율’의 실체였다.

 

그런가 하면, ‘현대, 서양’이 또 노골적으로 동양을 닮아 가는 모습도 있음을 저자는 놓치지 않는다. 서양미술로 작업을 시작한 이우환의 단색화(모노크롬)과 모노하(物派) 운동은 노자의 무위자연이나 불교의 유심(唯心)과도 맥이 닿는다(제8장). 생성과 소멸을 화두로 삼는 빌 비올라의 영적인 세계(148-149쪽), 마오쩌둥(毛澤東)의 얼음 두상이 녹아 없어지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은 김아타의 ‘온 에어(On Air)’ 시리즈의 무상(無常)(150-151쪽), 김수자의 ‘보따리’ 연작이나 비디오 작업들의 무심(無心) 또는 “내려놓음”(154-157쪽)도 다분히 동양의 전통적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골법’ 한 단어로 이 많은 것이 다 설명된다니, 어딘지 사기 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는가? 그렇다. 화가/저자의 고민과 발견은 사실은 보편적 조형 원리라고 할 수 있을 것으로, 이것을 반드시 동아시아 화론의 전통 용어인 ‘골법’으로 불러야 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이 책은 논리적 정치함을 기대하고 엉성함을 잡아내는 ‘매의 눈’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작가 또는 감상자로서 조형의 고민을 공유하고 이해와 해법을 공유하려는 ‘비둘기의 마음’으로 읽어야 할 책이다. 현장 미술가들과 미술학도, 머리보다 가슴으로 그림을 읽으려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처음 붓을 잡은 경주의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부터, 그 자신 화가로서 화폭 앞에서 갈등하고 동료 화가들이나 미술을 둘러싼 제도들과 좌충우돌한 체험들이 군데군데 끼어 있는 것은 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눈으로 쓴 현대미술 이론’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저자 소개

 

 

저자 김영길은 재미 화가이다. 1957년 경주에서 태어나 경주고와 영남대학교, 홍익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1986년 도미,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다시 석사를 마치고 현재 뉴욕에서 작가로 활동 중이다.

1996년 <어제와 다른 오늘>로 제1회 우리영화 시나리오 공모(조선일보⋅삼성영상사업단)에 당선했다. 1997년 토털미술상을 수상했다.

이수연 갤러리(1991, 1992), 금호미술관(1997), 포스코미술관(1998), API 갤러리(1998), 아시안아메리칸 아트센터(2010), 스페이스움 갤러리(2011), 갤러리 코리아(2011), 상하이 미술관(2015)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뉴욕 드로잉센터(1989), 광주비엔날레(1995), 토털미술관(1997), 도쿄시립미술관(1997), 환기미술관(1998), 멕시코 시립미술관(2000) 등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아트 인 아메리카>(1997, by Jonathan Goodman), <뉴욕타임스>(1999. 4. 30, by Holland Cotter), <아트 퍼시픽 아시아>(1999, by Jonathan Goodman), <월간미술>(1998, 박래경) 등에 개인 리뷰가 있다.